정부가 해상풍력 발전사업의 입지를 직접 발굴하는 ‘계획입지’ 제도를 본격 가동하면서 첫 예비지구 선정 절차가 시작됐다. 해상풍력 특별법은 예비지구를 지정할 때 ‘어업활동에 영향이 적을 것’을 요건으로 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어떤 해역을 ‘영향이 적은 바다’로 판단할지를 놓고 수산업계가 주요 조업어장과 양식장 보호를 요구하고 있다.

5일 정부와 지자체, 수산업계 자료를 종합하면 정부는 2031년까지 약 25GW 규모의 해상풍력 예비지구를 지정한다는 계획 아래 올해 첫 예비지구 선정을 추진하고 있다. 고흥군은 지난 2일 군이 추진하는 2GW 규모 해상풍력 가운데 1.5GW가 제1차 예비지구 선정을 위한 정부 심의 단계에 있다고 밝혔다. 다만 중앙정부가 제1차 예비지구 후보 명단이나 고흥의 최종 지정 여부를 공식 발표한 것은 아니다.
계획입지는 사업자가 먼저 바다를 선점한 뒤 개별적으로 인허가를 받던 기존 방식과 다르다. 정부가 풍황뿐 아니라 어업활동, 해양환경, 해상교통, 군사활동, 전력계통 등 여러 조건을 사전에 검토해 예비지구를 정하고, 이후 기본설계와 민관협의회를 거쳐 발전지구를 지정하는 구조다.
정부는 지난 9월 2일 열린 제1회 해상풍력발전위원회에서 2031년까지 25GW 규모 예비지구를 지정하고, 입지정보망에 구축한 301개 해양공간정보와 규제정보를 활용해 후보해역을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계획입지 절차는 예비지구 지정, 기본설계와 민관협의회, 발전지구 지정, 사업자 선정, 실시계획 승인, 착공 순으로 진행된다.
해상풍력 계획입지 제도의 법적 기반인 ‘해상풍력 보급 촉진 및 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은 올해 3월 26일 전면 시행됐다. 법 제14조는 예비지구 지정요건 가운데 하나로 ‘어업활동에 영향이 적을 것’을 명시하고 있다. 해상교통의 안전, 항만·어항 이용, 해양환경과 생태계, 군사활동 등도 함께 고려하도록 했다.
문제는 이 원칙을 실제 바다에 어떻게 적용하느냐다.
정부가 공개한 입지정보망에는 풍황과 어업활동을 비롯해 환경·생태, 해상교통, 군사활동, 전력계통 등 다양한 공간정보가 구축돼 있다. 공식 입지정보망은 공간정보 API도 제공하고 있으며 어획고와 선박자동식별장치(AIS) 같은 정보도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공개된 법률과 시행령, 입지정보망 운영규정, 정부 발표자료에서는 어선 조업밀도가 어느 정도면 후보지에서 제외하는지, 연간 어획량이 어느 수준이면 주요 어장으로 판단하는지, 양식장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둬야 하는지와 같은 전국 공통의 구체적인 정량 임계값은 확인되지 않는다.
정부가 내부 심사과정에서 별도 지표나 세부 평가기준을 사용할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는 없다. 따라서 ‘기준이 없다’고 단정하기보다 법에 정해진 원칙을 실제 첫 예비지구 심사에 어떤 방식으로 적용하는지가 아직 외부에서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상황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수산업계가 바로 이 지점을 문제로 제기하고 있다.
수협중앙회는 지난 2일 해양수산부와 기후에너지환경부 관계자가 참석한 해상풍력 정책간담회에서 예비지구 지정 때 주요 조업어장과 양식장을 보호하고 어업 영향을 우선 고려할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 어업인이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민관협의회 운영과 해상풍력 이익공유 참여 확대를 위한 제도적 지원도 요구했다.
현장에서는 장기간 운영되는 해상풍력 시설이 수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조사하고 피해와의 인과관계를 입증할 것인지, 풍력발전기 사이에서 어선이 통항하거나 조업할 경우 어떤 안전기준을 적용할 것인지도 과제로 제기됐다.
다만 특별법에 어업인 보호와 참여제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시행령에 따르면 발전지구 지정에 앞서 구성되는 민관협의회는 15명 이상 25명 이하로 구성한다. 어업인단체 대표와 주민대표를 합쳐 전체 위원의 절반 이상이 되도록 하고, 에너지·환경·수산업·해상교통 관련 전문가도 일정 비율 이상 참여하도록 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어업인이 절반 이상 참여한다’는 규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법이 보장하는 것은 어업인단체 대표와 주민대표의 합계가 절반 이상이라는 점이다. 어업인 대표 자체에 대한 전국 공통 최소인원은 별도로 규정돼 있지 않다.
또 법정 민관협의회는 예비지구가 지정된 이후 기본설계 단계에서 본격적으로 운영된다. 예비지구 지정 단계에서도 어업활동 영향을 검토하고 지자체가 지정요건에 대한 자체 검토자료를 제출하지만, 특별법상 민관협의회가 공식적으로 발전지구의 기본설계를 논의하는 시점은 그다음 단계다.
수협이 ‘예비지구 지정 때부터’ 주요 조업어장과 양식장을 보호하고 어업인 의견을 실질적으로 반영해 달라고 요구하는 배경을 이 같은 제도 구조에서 살펴볼 수 있다.
실제 후보지역에서는 법정 절차 이전부터 어업인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움직임도 진행되고 있다.
고흥군은 올해 초 수협과 어업인 대표 등이 참여하는 해상풍력 공존위원회를 구성하고 공공주도 해상풍력 사업을 추진해 왔다. 고흥군에 따르면 현재 1.5GW가 제1차 예비지구 정부 심의를 받고 있다. 다만 고흥군의 공존위원회는 특별법에 따라 예비지구 지정 이후 설치되는 법정 민관협의회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여수시도 3GW 규모 공공주도 해상풍력 사업을 추진하면서 지난 6월 예비지구 지정 신청을 마쳤다. 사업계획에는 어업피해를 고려한 어민 입지 선호 조사와 사전 어업피해 조사, 표준연간 어획량 조사, 주민참여·이익공유 방안 등이 포함돼 있다.
정부도 별도의 수산업 영향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올해 ‘해상풍력 입지정보 분석 및 영향조사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특별법 제41조도 해상풍력이 수산업과 해양환경, 해상교통 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조사·연구와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해상풍력 입지 선정이 단순히 ‘바람이 좋은 곳’을 찾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최근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연구진이 올해 발표한 ‘해상풍력법에 따른 입지 규제요인의 공간적 적용과 예비지구 가능해역의 변화 분석’에서는 전국 해역에 수심과 계통연계 거리, 법·정책상 입지제약 등을 적용한 16개 시나리오를 분석했다. 규제요인을 누적 적용한 경우 예비지구 가능면적은 조건에 따라 8천779㎢, 전체 분석대상의 19.2%까지 줄었다. 특히 선박 항행과 군사훈련이 후보해역을 줄이는 주요 요인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부가 찾아야 할 해상풍력 입지가 풍황뿐 아니라 어업과 항로, 군사활동, 환경, 전력계통 등 여러 조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연구 결과는 정부가 실제 예비지구 심사에 적용한 공식 결과가 아니라 연구진의 시나리오 분석이라는 점은 구분해야 한다.
어업인 이익공유 역시 법적 근거는 이미 마련돼 있다.
특별법 제18조는 해상풍력 발전시설 설치지역 주민뿐 아니라 시설 설치로 인해 ‘어업활동에 영향을 받는 어업인’도 발전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사업 참여금액 등을 우대할 수 있도록 했다.
따라서 현재 쟁점은 어업인 이익공유 제도를 새로 만들 것이냐가 아니다. 실제 사업에서 어떤 어업인을 ‘영향을 받는 어업인’으로 판단하고, 이동하면서 조업하는 어선이나 다른 지역에서 출항해 해당 해역을 이용하는 어업인까지 어느 범위에서 참여시킬지가 중요한 문제다.
바다는 육지의 발전시설과 달리 해당 행정구역 주민만 이용하는 공간이 아니다. 계절과 어종에 따라 조업해역이 달라지고 여러 지역의 어선이 같은 어장을 이용하기도 한다. 특별법이 단순 거주지가 아니라 ‘어업활동에 영향을 받는 어업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도 이런 특성과 연결된다.
해상풍력단지 내부에서 어업을 계속할 수 있는지도 향후 풀어야 할 문제다. 국내에서는 서남해 해상풍력 실증단지 등을 바탕으로 어선 통항과 조업을 허용하는 방안이 검토돼 왔지만, 실제 안전성은 어선 크기뿐 아니라 어법, 닻의 종류와 무게, 터빈 간격, 해저케이블 위치, 기상조건 등에 따라 달라진다.
결국 올해 처음 시행되는 정부 계획입지 제도는 단순히 해상풍력 사업의 인허가 속도를 높이는 제도에 그치지 않는다. 기존 민간사업자 중심 개발 과정에서 반복됐던 어업권과 주민수용성 문제를 입지를 정하는 초기 단계에서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첫 시험대이기도 하다.
정부는 2031년까지 25GW 규모의 예비지구를 확보할 계획이다. 첫 예비지구 심사가 이미 진행되는 만큼 앞으로는 법에 적힌 ‘어업활동에 영향이 적은 해역’이라는 원칙이 실제 후보지를 고르는 과정에서 어떻게 적용됐는지 확인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첫 예비지구가 확정되면 정부가 어떤 어업자료를 사용했는지, 주요 조업어장과 양식장이 실제로 어떻게 반영됐는지, 신청해역 가운데 조정되거나 제외된 해역이 있었는지 여부가 계획입지 제도의 실효성을 판단하는 첫 사례가 될 전망이다.
출처: 국무조정실·해상풍력발전위원회, 국가법령정보센터 「해상풍력 보급 촉진 및 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 및 시행령, 해양수산부, 해상풍력 입지정보망, 고흥군, 수협중앙회,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연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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